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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짓수 대중화 위해 노력" 퍼스트그룹 고은옥 대표
등록자  교육부 조회수 460 작성일 2010-10-19

\"주짓수 대중화 위해 노력\" 퍼스트그룹 고은옥 대표

주로 영화에서 주인공을 보호하는 역할로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경호원.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호원을 주제로 한 영화, 드라마가 대거 출시되면서 경호원이라는 직업이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국내 경호 시장의 규모 역시 급속도로 커졌다.

보통 경호원이라 하면 정장 복장의 건장한 청년이 보호 대상자 근처에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머릿속을 스친다. 위험성이 크고, 신체적인 능력이 필요하기에 오직 남성들만이 가질 수 있는 직업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남녀평등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직업의 구분은 사라지고 있다. 여성 경찰이 범인을 제압하고, 여성 특전사가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시대다. 경호 분야 역시 여성들이 활동영역을 점차 넓히고 있는 추세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신체적인 능력은 떨어지지만 남성이 가지지 못한 섬세함과 따뜻함, 보필능력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경호 분야에서 여성으로 조직된 단체를 출범해 국내 여성경호 분야의 독보적인 위치에 올린 여성이 있어 눈길을 끈다. 퍼스트그룹의 고은옥 대표(32)다. 1996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그녀는 부친이 안 계시고, 집안에 아들이 없어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싫어 경호업계에 뛰어들었고, 2003년에는 국내 최초의 여성경호 법인 퍼스트레이디를 창설했다. 현재는 퍼스트레이디 외에도 3개의 법인을 보유하고 있는 여성 CEO다.

초등학교 시절 태권도 선수로 활동했던 고은옥 대표는 경호원 생활을 하며 격투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국내에 격투기 붐이 불기 시작한 2000년 초부터 프라이드, K-1, 김미파이브를 유심히 지켜본 것. 현재는 태권도, 복싱, 주짓수 분야에 후원을 하고 있고, 프로모션 활동은 물론 국제킥복싱연맹 부회장, 부천시 생활체육종합무술연합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그녀는 최근 주짓수 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출범한 아부다비 주짓수 코리아에 후원을 결정한 그녀는 국내 주짓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계획이다. 고은옥 대표는 \"주짓수가 지금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경호를 개척했듯이 주짓수도 바꿔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하는 고은옥 대표 인터뷰 전문.

- 경호원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 우리 집안에는 아들이 없다. 딸만 셋이다. 아버지께서 중학교 때 돌아가셔서 주변 분들은 늘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아들 없이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것은 물론 딸들이 시집을 가면 엄마 혼자 살아야 한다는 등 아들 없이는 집안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그런 우려가 너무 싫었다. 그것을 타계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고, 결국 운동을 하면서 경찰이나 군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장교로 가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차선책으로 경호를 택했다. 아르바이트로 접근한 일이 삶의 전환점이 됐다.

- 경호원이라는 직업을 좋아할 수 있었던 이유는?

▲ 항상 모시는 분들이 바뀌고 상황이 변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여성으로서 경호 분야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물론 좋지 않은 기억도 있다. 하지만 경제인, 정치인 등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배운 점이 많다. 나는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해외출장을 많이 다니고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며 이 일에 빠져들었고, 점차 성장해 나갔다.

- 스무 살 때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 캠퍼스의 낭만은 전혀 없었다. 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미팅이나 소개팅은 물론 엠티도 가지 못했고, 동아리 활동조차 제대로 못했다. 유일하게 잠시 했던 것이 검도 동아리에서 운동한 것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기진 못했지만, 사회에서 많은 경험을 하며 성장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시작한 경호 일에 점차 빠져든 시기였다.

- 여성으로서 경호를 하기엔 힘든 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

▲ 처음엔 회사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교육생으로도 뽑아주지 않았다. 결국 힘들게 경호원이 되어 현장에 투입됐지만 나를 경호원으로 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경호원 대우를 받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나를 옷 가게 점원으로 알고 \"언니, 이 옷 얼마에요?\"라고 묻는 분들도 있었다. 얼굴이 못생기고, 키가 작고, 엉덩이가 커서 안 된다는 말도 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모델 같은 경호원을 생각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현장에 투입되면 \"일당 줄 테니 같이 놀자\"고 하는 분들도 있었고, 술 먹는데 밤새 옆에 세워놓는 경우도 있었다. 사회적인 고정관념 때문에 힘들었다. 능력을 떠나 이 직업은 여성이기에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경호 분야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

▲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당시 보디가드, 이연걸의 보디가드, 모래시계 등 경호원이 알려지는 영화 및 드라마가 대거 히트를 치며 경호원이라는 직업이 대중화가 됐다. 대학교에도 경호학과 신설됐다. 여성 경호원이라는 분야 역시 희소성이 있었기에 위상이 높아졌다. 그러나 당시에는 여성경호원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단체가 없었다. 여성 경호원들의 권익보호는 물론 수요와 공급이 제대로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상황을 해결하고자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적인 욕심보다는 단지 여성경호원들의 구심점이 되는 단체를 만들고 싶었다. 사업자를 내기 위해서는 자본금 1억과 유단자 25명, 경찰청 허가 등 갖춰야 할 게 많았다. 결국 적금, 보험을 다 해약하고 창업자금 대출을 받으며 어렵게 시작했다. \'어린 여자가 뭘 하겠다고 나대냐\'며 비웃거나 반대하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모든 것을 다 투자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길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사무실에서 밤을 지세고 낮에 현장에서 일하는 게 다반사였다. 당시 2003년이었는데, 대학원을 다니며 사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대적인 흐름을 잘 탔던 것 같다. 홈쇼핑에 경호 상품을 런칭했을 때는 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후에는 후지TV에 소개되며 해외사업에 물꼬를 텄고, 국내 언론과 방송에 자주 노출되며 자연스럽게 마케팅이 됐다. 가장 컸던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구전효과였다. 열심히 하다 보니 고객들이 우리를 믿어준 것이다. 또한 당시 같이 활동했던 멤버들이 이슈가 될 만한 이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도 도움이 됐다. 707특전사, 경호학 전공자, 운동선수 등 매우 다양했다.

- 홈쇼핑에 경호 상품을 런칭하는 것은 당시 매우 신선한 일이었을 것 같다.

▲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1시간에 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학원폭력, 스토킹 피해 등이 많았던 시기였다. 홈쇼핑을 통해 힘만 쓰는 딱딱한 경호원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점이 많다는 것을 알렸다.

- 경호원은 주로 어떤 일을 하는가?

▲ 신변보호, 안내 및 질서유지, 도난방지, 출입관리는 익히 알려졌다. 그러나 요즘은 단순히 무술만 잘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격투 외에도 비서역할, 경호운전, 외국어 회화 등 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예전에는 운동선수 출신이 경호원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관광, 외국어, 비서 전공자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젠 승마, 골프, 와인도 배운다. 모시는 고객들의 수준을 맞춰야 한다. 도태되지 않으려면 계속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 본인이 보호를 했던 대표적인 유명인사는?

▲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 영화배우 톰 크루즈, 가수 비 등 매우 많다.

- 다치는 적도 많았을 것 같은데.

▲ 당연히 몸을 부딪치다 보니 다친 적이 많다. 한 번은 왼손 검지가 차 문에 끼이면서 뼈가 조각난 적이 있었다. 그 상태에서 고객을 끝까지 모신 이후 병원에 갔던 생각이 난다. 살이 없어져 다른 부위의 살을 이식했고, 핀을 박았다. 또한 무릎 인대가 파열된 적도 있었다. 콘서트 경호에서는 옷이 찢기고, 머리가 뜯기는 것은 보통이다. 특히 건설현장에는 텃세가 심했다. 협박을 받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탐정을 했던 경험으로 모두 피의자를 잡아냈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

- 가장 뿌듯했을 때는?

▲ 연예인, 정치인 등 유명인사보다 일반인들을 도울 때 더 많은 보람을 느낀다. 가정폭력 때문에 숨어 사시는 분들, 왕따에 시달려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학생, 누군가에 돈을 빼앗기는 등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 스토킹에 시달리는 사람, 게임 중독에 시달리는 아이들, 성폭행에 힘겨워 하는 여성 등 많은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사회에서 경호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사정이 어려운 분들은 서비스 차원으로 도와주기도 했다. 자사의 업무 방향 역시 단순히 힘을 쓰는 경호보다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중이다.

- 2007년도에 40억의 매출을 올렸다고 들었다. 현재는 어느 정도인가?

▲ 이전보다 매출이 늘었으나 아직은 공개하고 싶지 않다. 100억원이 되었을 때 알리고 싶다. 건설 분야가 잘 되고 있는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매출이 기대된다.

- 대외적으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 청년경제인연합회 회장, 부천청년회의소 부회장, 한국경호경기학회 이사, 한국민간경비학회 이사, 한국특수행정학회 이사, 한나라당 중앙 청년위원 등 많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민족여성네트워크 차세대여성리더로 뽑혀 영부인의 초청을 받아 청와대도 다녀왔다. 여성 단체에서 활동하다보니 많은 곳에서 감투를 씌워주셨다. 지금은 각 법인마다 대표를 두고, 나는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 편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일단 박사과정을 밟을 계획이다. 또한 훌륭한 여성 경호원을 많이 양성해야 한다. 그 일환으로 여성경호인협회를 조만간 발족할 예정이다. 그 단체를 발족하는 것은 숙원사업이었다. 퍼스트레이디가 여성경호 분야에서 구심점이 됐는데, 영리법인이다 보니 새로운 단체가 필요했다. 장기적으로 여성경호원의 권익을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 격투기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 초등학교 때 태권도 선수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격투기를 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K-1, 프라이드, 김미파이브 등을 접하게 됐는데, 너무 재밌었다. 관심만 가지고 지켜보다가 김효민을 후원하며 격투기 분야에서도 활동하게 됐다. 지금은 복싱 프로모션을 비롯해 태권도 분야에도 후원을 하고 있다. 또한 국제킥복싱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짓수 분야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 격투기의 매력은?

▲ 주변에 격투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통의 여성보다는 접할 기회가 많다. 역동적인 스포츠가 좋다. 요즘에는 격투기를 사업적인 마인드로 보는 편이다. 특히 K-1의 경우 어떤 마케팅을 하고 있는지 유심히 본다. 그런 방법적인 것들을 배우고 싶다. 일본인들은 사업 스타일이 매우 꼼꼼하고 철저하다. 예전부터 킥복싱 경기는 많이 봤는데, 이번에는 아부다비 주짓수 대회도 직접 관전할 생각이다.

- 혹시 좋아하는 선수가 있나?

▲ 예멜리야넨코 표도르와 레미 본야스키를 가장 좋아한다. 표도르의 경우 매우 선하게 생겼고, 겸손하다. 그런 사람이 최강자라는 점이 놀랍다. 개인적으로 표도르의 동생인 알렉산더를 경호했던 적이 있다.

- 주짓수에는 어떻게 관여하게 됐는가?

▲ 우연히 인연을 튼 블루드래곤 김진철 관장님의 추천으로 부천시 생활체육종합무술연합 회장에 오르게 됐다. 주짓수를 잘 모르기에 부담스러웠지만 관장님께서 도와주신다는 말에 결정했다. 앞으로 열리는 주짓수 대회를 지켜보며 점차 배워나갈 생각이다. 스포츠 마케팅에 관심이 많다. 복싱과 태권도에 이어 주짓수 분야에서도 경험을 쌓아 프로모션을 해보고 싶다.

- 주짓수 분야에서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 일단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금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경호를 개척했듯이 주짓수도 바꿔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됐으면 좋겠다.

-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가?

▲ 일단 중계 루트를 알아보고 있다. 또한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홍보도 고려하고 있다. 아부다비 한국예선에서 뽑힌 4명의 선수들이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돌아오면 마케팅 방법이 생기면서 주짓수를 접할 대상이 많아질 것이다. 주짓수를 후원하고 있는 입장에서 선수육성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종합무술 회장으로서 한쪽에만 편중할 수는 없다. 주짓수에 포커스를 맞추겠지만 태권도와 킥복싱을 접목시키는 계획도 갖고 있다. 태권도, 킥복싱 분야의 장점은 벤치마킹할 생각이다. 심지어 태권도나 킥복싱 대회에 주짓수를 시범종목으로 넣거나 반대로 주짓수 대회에 태권도나 킥복싱 시범단을 초청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 만들어나가며 배우고 싶다.

- 결혼은 언제 할 계획인가?

▲ 현재 가장 힘든 과제다. 그러나 아직은 일이 우선이다. 나와 동생이 아들 역할을 해야 하기에 결혼을 못하고 있다. 어머니는 우리만 결혼하면 걱정이 없다고 하시지만, 때가 되면 할 것 같은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30대 중반을 넘기면 목숨을 걸겠지만 아직 그런 나이는 아니다. 40세가 되기 전까지는 일을 우선으로 하고 싶다.

고은옥 대표 프로필_한국특수행정학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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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일 기자 (junil.k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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